2017년 2월 22일 수요일

최근 환율(조작)에 관한 이러저런 외신 논의를 보고 몇가지 생각거리를 정리해 둔다.

I. Currency Manipulation Is a Real Problem

지난 13일 월스트리트저널의 Op-Ed에 환율에 대한 꼭지가 하나 실렸는데, 제목이 심상치 않았다: <환율조작은 실제 문제>. 그리고 기사의 내용은 통상의 나용보다 훨씬 더 강했다.

두나라가 주로 언급되었는데, 일본에 대해서는 대규모 양적완화가 환율과 무역경쟁력에 영향을 미치므로 환율조작이다라는 것이었고, 중국에 대해서는 위안화 통화가치를 떠받치는 정책을 펴왔기 때문에, 환율조작국이라는 주장이었다. 이것은 그간 미국 정부의 공식입장과는 매우 달라진 것이었다.

II. 환율조작국 규정

미국 재무부는 종합무역법(Omnibus Trade and Competitiveness Act of 1988)과 교역촉진법(Trade Facilitation and Trade Enhancement Act of 2015)에 의거 일년에 두차례 환율보고서(Foreign Exchange Policies of Major Trading Partners of the United States)를 작성해서 미 의회에 보고하는데, 종합무역법에 의하면 다음 세가지 기준을 다 충족할 때 환율조작국 판정이 내려진다.
  1. 현저한 대미 무역수지 흑자 (200억불 초과)
  2. 상당한 경상수지 흑자 (GDP대비 3% 초과)
  3. 지속적인 일방향 환율시장 개입 (연간 매수액 GDP 2% 초과 및 8개월 이상 순매수)
1번과 2번이야 자명한 것이고, 세번째 규정을 보면 환율조작의 정의를 '인위적인 시장개입으로 달러를 순매수하여 자국 통화가치를 낮게 유지하는 것'에 초점을 둔 것을 알 수있다.

III. 최근 환율보고서

가장 최근 발행된 미국 재무부 보고서(Oct. 2016)를 보면 세가지 기준을 다 충족시키는 나라는 없다. 즉 작년에 어떤 나라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일본의 경우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676억불, GDP대비 경상수지 흑자비율 3.7%로 앞의 두가지 기준을 만족하지만, 세번째 기준에서 외환시장 개입액 제로, 따라서 개입비율 제로다. 그러니까 미국 정부에 의하면 일본은 아예 외환개입을 하지 않는 국가라는 것.

또 중국을 보면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3,561억불로 이 기준을 만족하지만, GDP대비 경상수지 흑자비율 2.4%로 3%에 미달하고, 무엇보다 외환시장 개입 비율이 -5.1%이다. 미국정부에 의하면 중국은 위안화 가치하락과는 반대방향으로 개입을 한 것.

그리고 한국을 보면 일본과 마찬가지로 무역수지 흑자 (302억불), GDP대비 경상수지 흑자비율 (7.9%) 두가지는 기준선을 넘었지만, 외환시장 개입규모는 -1.8%로 한국 역시 중국과 마찬가지로 반대방향 개입을 한 것.

IV. 파이낸셜 타임즈 한국과 대만을 환율조작국으로 지목

월스트리트저널의 기고문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떨리면서도, 한국은 빠져서 다행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같은 날 FT에는 당황스럽게도 <아시아 환율조작국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의 분노는 방향을 잘못 잡았다. 중국과 일본이 아니라 대만과 한국이 최악의 조작국이라는 증거가 있다>라는 기사를 게시하였다.

이 기사는 내가 앞에서 정리한 것과 같은 논조로 일본과 중국을 옹호한다. 일본은 2011년 이후 외환시장 개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중국은 현재 위안화 평가절하가 아니라 평가절상을 위해 개입한다는 것.

그리고나서 생뚱맞게도 한국과 대만을 타겟으로 하는데, 내가 전에도 몇번 언급한 Brad Setser (CFR 시니어 펠로우)를 인용한다. "지속이고 적극적으로 자국 화폐가치를 절하하는 행동을 한 내가 아는 유일한 국가는 한국과 대만이다."

대만은 위의 표에서 보듯이 실제 평가절하를 위한 환율개입을 한 것으로 판정하였고(2.5%),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율도 기준을 넘었다(14.8%). 다만 전체 경제규모가 작아서 대미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136억불로 기준에 미달해서 환율조작국 판정에 들어가지 않은 것.

문제는 우리인데, 우리는 FT가 중국을 옹호한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외환시장을 개입한 것인데, 중국과 한국에 대해 다른 잣대를 적용한 것. 이에 대해서 한국이 난리가 났고,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FT에 서한을 보내서 이것이 17일 개제되었다 <한국은 환율을 조작하지 않는다>

다만 조금 찝집한 것은 한국은 규모가 큰 선진국 중, 외환시장 개입규모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는 몇 안되는 나라다. 그래서 미국 환율보고서도 한국 통계가 아닌 자신들의 추정치를 사용하는데, 이것 때문에 뭔가 공격의 빌비를 주고 있는 측면도 좀 고려해야 할 듯.

V. Schumer-Hawley Act

사실 미국에서 보호무역주의-환율조작국공격의 전통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여야를 구분하는 일도 아니다. 지난 달 트럼프 집권 직후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라고 목청을 높인 것은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찰스 슈머였다.

슈머는 오래전부터 공화당 상원의원 린지 그라함과 함께 중국의 환율조작에 대해 집요하게 싸워왔는데, 가이트너의 <스트레스 테스트>에 의하면 슈머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응징하는 입법을 추진했을 때, 대공황을 악화시킨 스무트-홀리 법에 빗대 "당신 법이 슈머-홀리 법이라고 불리길 원하느냐"면서 이법의 입법을 봉쇄시킨 대목이 나온다.

VI. Judy Shelton

다시 저널의 기고로 돌아가자. 기사를 읽었을 때는 몰랐는데, 이 기고자가 엄청난 인물이었다. 주디 셀튼이라고 트럼프 캠페인팀의 극히 희귀한 경제학자 (유타대학 경영학박사) 중 하나였고, 금본위제를 강하게 밀어붙이며, 연준 수뇌부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가 심상치 않다.

Judy Shelton, Ph.D. portrait

캠프의 또 다른 경제학자였던 강력한 반중인사 피터 나바로를 국가무역위원회(National Trade Council)를 신설하면서까지 위원장을 맡겼던 것을 생각하면, 주디 쉘튼의 연준 의장 취임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제 우리는 미국 재무부의 보호무역주의, 환율조작국 공세 이상으로, 심지어 연준의 금본위제 복귀시도라는 악몽까지 고민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 듯. 지금도 앞으로도 죽도록 고생할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과 한국은행 국제국 동료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아 그리고 아마존 찾아보니, 셀튼의 저서가 몇권 있는데, 가장 최근의 것이 "Fixing the Dollar Now"이다. 70쪽이 채 안되니 누가 애국하는 마음으로 이 책 번역해주면 좋을 듯.

Fixing the Dollar Now Cover

2017년 1월 26일 목요일

쇠락해가는 아메리칸 드림

순전히 내 주관적인 평가로는 공공경제학에 있어서 Raj Chetty보다 더 흥미로운 인물은 없다. 그의 글은 늘 접할 때마다 나는 항상 "와!"한다. 그래서 아마 그의 모든 페이퍼가 언론에서 화제가 되는 것이겠지. 작년 말에 체티가 미국의 세대간 절대적 소득 이동성에 관한 보고서를 NBER페이퍼로 발표했을 때 (난 물론 페이퍼가 아닌 프리젠테이션 도큐먼트를 본 것이지만), 이번에도 난 "아 참 대단하다"라고 생각했다.

세대간 절대적 소득 상향 이동성을 '자식이 부모보다 소득이 더 높은 것'으로 정의할 수 있을텐데, 이것은 데이터 문제때문에 실증분석을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보였다. 자식이 성인이 되었을 때 본인(가족)의 소득 데이터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의 부모가 동일한 나이였을 때 소득이 얼마였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하지만 체티는 센서스 자료와 과세 자료를 종합하여 이에 대한 (거의) 최초의 실증분석을 수행했다. (이러한 데이터 가공의 문제는 내 역량과 관심을 벗어난다, 문제가 심각하면 학자들이 논쟁을 통해 해결할 것이고). 공부삼아 차트를 통해 그 결과를 요약해 둔다.

1. 세대간 소득 상향 이동성

이 그림의 세로축은 '자식이 부모보다 더 실질소득이 높은 비율'이고, 가로축은 부모 소득의 상대적 위치이다. 예컨데 부모 소득이 하위 20%인 경우 자식이 성인이 되어 부모보다 더 소득이 높을 가능성은 대략 70% 정도 되지만 부모 소득이 상위 20%인 경우엔 그 가능성이 60%에 채 미치지 못하게 된다. 위 그림에서처럼 이 곡선이 우하향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차트의 1960이라는 표시는 이것이 1960년에 태어난 인간들의 부모소득과 이 인간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를 의미한다 (이를 1960 코호트라고 하자). 

좀 자세히 얘기하자면, 소득은 '2014년가치로 측정한 연령 30세의 세전 실질 가계소득'이다.


2. 세대간 소득 상향 이동성의 시점간 변화

이 그림을 보면 1960년에 태어난 인간들보다는 그 전에 태어난 인간들이 부모보다 잘 살 가능성이 크고, 그 후에 태어난 인간들은 그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컨데 제일 위와 아래의 1940 또는 1980이라는 표지가 붙은 곡선들은 1940년 코호트와 1980년 코호트를 지시한다.


3. 시점별 절대적 소득 상향 이동성의 평균값의 변화

이 그림을 보면 1940년대 초반 출생한 인간들은 자식이 부모보다 더 소득이 높을 가능성이 대략 90퍼센트 언저리였지만, 1950년대 초반에 70%수준으로로, 1980년에는 50퍼센트까지 하락한 것을 보여준다.


4. 로버스트니스 - 물가상승률

혹시 실질소득을 계산하는 데 사용된 물가상승률에 따라서 이 결과가 달라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답하기 위해 대안적 물가상승률을 이것저것 넣어도 대동소이


5. 로버스트니스 - 세전 세후

세전소득이 아니라 세후소득 또는 세금과 이전소득을 모두 반영한 소득으로 해봐도 역시 대동소이.


6. 로버스트니스 - 연령

기준 연령을 서른이 아니고 마흔으로 바꿔도 역시 비슷


7. 로버스트니스 - 가계와 개인

가계소득으로 측정하지 않고, 개인소득을 측정하면 다를까? 대부분 동일하나 딸과 아버지의 개인소득으로 측정하면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오렌지색). 그런데 이것은 딸과 아버지의 젠더가 다른 효과가 크기 때문이고 (여기에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딸과 엄마의 개인소득으로 한다면 이것도 꽤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 그 이유는 시점간 여권차이일 것), 그래서 대세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


8. 로버스트니스 - 패밀리 사이즈

가계소득으로 비교했는데, 시점별로 가계구성원 평균값이 달라서 발생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 이를 보정해줘도 비슷


9. 두가지 원인

다시 돌아가서 아래 그림을 보면 1940 코호트와 1980 코호트의 세대간 절대적 소득 상향 이동가능성을 표시한 것인데, 왜 1980년으로 가면 1940년에 비해 상향 가능성이 뚝 떨어졌을까? 원인은 두가지가 있을텐데, 첫째는 소득성장률이 갈수록 낮아져서 자식이 부모보다 잘 살기 어려워졌을 수도 있고 둘째는 불평등이 심각해져서 늘어난 소득이 극소수에 집중되어 다수가 부모세대보다 어려워졌을 수도 있다.


10. 무엇이 더 중요한 원인인가?

체티는 참으로 영리하게도 반사실적인 (counter factual) 상황을 구성하여 분석한다. 첫번째가상적 상황은 1980년대가 1940년대만큼 고도성장을 한다고 가정한 것이다. 이것이 오렌지색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실제 1980년 코호트보다는 세대간 상향 이동성이 개선되지만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두번째 가상 상황은 1980년대가 1940년대만큼 평등하다고 가정한 것이다 (녹색 점선). 이것은 실제 1980년 코호트보다 뚜렷이 개선되어 오히려 1940년대 코호트와 유사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체티에 의하면 상향 이동성이 하락한 것의 핵심 원인은 불평등 심화이고 보조 원인은 저성장이라는 것.


11. 우리는?

한국에서 누가 좀 이런 시도 안하나 모르겠다. 미국과 동일한 자료야 없겠지만, 그래도 어떻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 물론 한국의 만사형통 키워드가 주민등록번호라 과세자료에 대한 연구목적의 공개(물론 적절한 보안 통제 후)만 되면, 쉽게 이 비슷한 분석 할 수 있을텐데 그건 좀 아쉽다. 근데 또 그게 공개되서 분석하면 과세자료는 탈세목적의 은폐문제가 심각하고, 면세자들에 대한 정보가 없고 등등의 추가적 고려사항들이 있겠지만, 그거야 또 뭐 다른 자료 연계해서 보정하고...

좌우간 요즘은 경제학자들 참 대단하다.

Source. 체티가 운영하는 The Equality of Opportunity Project에서 The Fading American Dream 항목에서 NBER 워킹페이퍼, 비전문가용 요약문, 프리젠테이션 자료, 데이터, 주요 언론보도내용 등을 다 구할 수 있다.

2017년 1월 4일 수요일

법인의 국외소득과 법인세 실효세율 (A little wonkish)

Disclaimer: 내 블로그 또는 페이스북 포스팅은 언제나 어떤 주제이거나 다 나 개인의 의견이고, 내가 소속한 기관과는 무관. 이번 포스팅도 예외가 아님을 분명히 해둔다.

며칠전 JTBC 토론에서 대기업 법인세 실효세율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는데, (나는 안봤음. TV토론 거의 안봄) 여기저기에서 다들 팩트 체크를 하는데, 대충 숫자는 다 엇비슷하게 맞는 얘기인 것 같다. 다만 많이들 헷갈려 하는 주요 논점 중 하나가 실효세율 계산시 '외국납부세액공제' 처리 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이게 사실 일반인들은 접하기 어려운 주제라 여기서부터 그냥 암호가 되는 느낌인데, 몇 분들이 나한테까지 궁금한 것을 물어 오셔서, 내 나름 약간의 팩트 설명을 하려고 한다.

1. 명목세율과 실효세율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면, 이런 것. 보통 법인세율이 20%라고 할 경우 이것은 법인세법에 명시된 명목세율이다. 어떤 기업의 법인세 납부 전 소득(과세표준이라고 함)이 1,000인데 여기에 20%를 곱한 200원을 납부하여야 한다 (부담세액이라고 함). 그럼 실효세율은 뭐냐? 거꾸로 계산하면 됨 부담세액을 과표로 나눈 것, 그러니까 200원/1,000원 해서 20%가 실효세율이고, 이 경우 명목세율과 실표세율은 동일하다.

그런데 법인세법에서는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예컨데 R&D 투자를 한다던지, 환경보호에 지출을 한다던지, 사회적 약자의 고용을 늘린다던지 뭐 이런 경우에 세금을 깍아주는 제도가 있고, 이것을 세액공제라고 한다. 만약 위 기업이 R&D지출에 의해 50원의 세금을 공제받게 된다면, 이때의 부담세액은 150원이 되고, 실효세율은 150원/1,000원 해서 15%로 이제 명목세율과 실효세율 사이에 괴리가 발생한다.

2. 최저한세율

그런데 이렇게 법인세를 깍아주는 금액이 너무 심하지 않도록 제어장치를 두고 있는데, 이것을 최저한세율이라고 한다. 만약 최저한세율이 17%라고 한다면, 위 기업은 단순히 계산한 부담세액이 150원이었지만, 최저한세율을 적용할 경우 170원이 되어 두 금액 중 큰 금액을 납부하여야 한다. 최종적으로 이 경우 170원이 부담세액이 되고, 실효세율은 17%가 될 것이다.

3. 국외 이중과세

국제적 활동을 하는 다국적 기업은 좀 특이한 문제가 발생한다. 예컨데 한국기업 A가 필리핀에 100% 출자한 자회사 B를 두고 있다고 하자. A사와 B사는 각각 한국과 필리핀에서 영업이익을 1,000원씩 냈고, 필리핀의 명목세율은 10%이고, B사는 당해년도 이익 전액을 모회사에 배당했다고 하자.

단순하게 다음과 같이 처리하는 경우를 먼저 생각해보자. A사의 총 과표를 국내영업이익 1,000원과 국외로부터 수취한 배당수익 900원을 합쳐서 1,900원으로 하고, 여기에 국내 법인세율 20%를 곱하면 380원의 세금을 내야한다. 이렇게 하면 이 기업(집단)은 국내외에서 총 2,000원을 벌어서 총 480원의 세금을 납부한 것이다. (필리핀에 100원 한국에 380원). 그러면 이 기업 입장에서 총 실효세율은 24% (=480원 / 2,000원)이 되고, 이것은 필리핀의 세율보다도, 한국의 세율보다도 더 높은 세율이 된다.

이것은 필리핀에서 발생한 소득에 대해서 필리핀에서도 세금을 납부하고, 한국에서도 세금을 납부하는 이중과세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4. 외국납부세액공제

이것을 방지하는 여러 제도 중 하나가 한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외국납부세액공제이다. 이것은 어떻게 계산하냐하면, 국내외 소득 전체 (그러니까 2,000원)에 대해서 명목세율을 곱하고, 그다음에 외국에서 납부한 세금을 세액공제해 준다. 그러면, 2,000원 x 20% - 100원 해서 국내에 300원의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잠깐, 모회사의 소득은 위에서 보듯 국내 영업이익 1,000원과 국외에서 수취한 배당소득 900원인데, 왜 1,900원이 아니고 2,000원으로 계산을 할까? 실제로는 1,900원의 사업소득에서 외국납부세액 100원을 추가해서 (이것을 이 동네 표현으로는 익금산입이라고 하는데), 2,000원의 과표를 만드는 것인데, 이러한 100원의 익금산입이 없으면 이중 과세를 방지하기 위해서 이중의 혜택을 주는 꼴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좀 복잡할지 모르겠으나 이렇게 계산하면, 법인의 입장에서 총 400원의 세금을 납부한 것이 되고 (필리핀에 100원, 한국에 300원), 글로벌 차원의 실효세율은 20%로 되어 적어도 이중납부의 부담은 없어진다.

문제는 이 경우 한국법인 A의 실효세율이 얼마이냐 하는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취하는 단순 방식으로 부담세액 / 과세표준으로 하면 300원 / 2,000원 해서 15%가 된다. 다시 잠깐, 이렇게 되면 최저한세율을 17%라고 정했는데 그러면 세금을 340원 납부하고 실효세율이 17%로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최저한세제도는 외국납부세액공제 등 몇가지 세액공제는 적용을 배제한다. 그러니까, 최저한세제도의 운용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이중과세는 원천적으로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참 정부는 이러한 단순실효세율 계산은 왜곡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외국납부세액공제를 배제한 조정된 실효세율이 더 정확한 지표라고 생각한다. 이는 (부담세액+외국납부세액공제) / 과세표준이 되는데 이렇게 계산하면 400원 / 2,000원이 되어 20%가 된다.

추가로 하나만 더 생각해보자. 혹시 자회사 소재국의 법인세율이 국내보다 높으면 어떻게 될까? 그러니까 법인세율이 10%인 필리핀이 아니고 법인세율이 25%인 일본이라면? 이 경우 중간과정은 다 생략하고 한도가 있어서 일본에서 납부한 세금 250원과 국내에서 납부한 세금 200원이 되어 최종적으로 450원이 된다. 일본에서 세금을 납부한 것이 국내에서 납부할 것보다 오히려 높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추가로 이중과세하지 않지만, 국내보다 높다고 50원을 국내 세금에서 추가로 깍아주지는 않는 것이다.

5. 어떤 실효세율이 더 정확한가

문제는 이 두가지 실효세율 지표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정확한가 하는 것인데, 일부 논객들은 두가지를 구분하여 정부의 조정된 실효세율 지표는 기업 부담을 적절히 나타내는 지표이지만, 한국정부의 세수는 400원이 아니고 300원 이므로 정부 차원에서는 실효세율을 단순한 실효세율 지표가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뭐 딱 뿌러지는 정답은 없을지 모르겠으나, 외국납부세액공제를 추가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실효세율을 기본적인 지표로 사용할 수는 없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우리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실효세율을 비교할 때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비해 세제특혜가 더하다 또는 덜하다의 비교를 하는 것이지 정부 재정수입의 관점에서 얘기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든 저렇든 더 나아가서, 혹시 한국 세법 상의 외국납부세액공제 제도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이에 기초해서 수정된 실효세율 지표를 사용하는 것이 국제적 기준에서 보아 다국적 기업에게 특별히 유리하게 설계된 세제가 아닐까라는 질문을 하시는 분이 있다. 이것을 좀더 살펴보자.

6. 세계법인세와 영토법인세

앞의 4에서 말한 외국납부세액공제 방식의 법인세 처리를 통상 세계(worldwide)법인세라고 한다. 그러니까 기본 관점은 전세계에서 발생한 소득에 대해서 다 법인세를 부과하되, 외국에서 이미 납부한 법인세가 있으면 그만큼은 차감해주서 이중과세를 방지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와 대비되는 방식이 영토(territorial)법인세이다. 이는 아예 과세 대상에서 외국에서 발생한 소득은 통채로 배제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한국-필리핀 모자회사 사례로 돌아가면, 한국 소재 모회사의 사업소득은 1,000원(국내영업소득) + 900원(외국에서수취한배당수익)으로 1,900원이었지만 여기에서 900원을 빼서 과표를 산정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과표가 아예 1,000원이 된다. 이를 배당수익의 익금불산입이라고 한다.

그러면 사실 세제는 엄청 간단하다. 1,000원 x 20% 해서 200원이 된다. 이 회사는 필리핀에서 1,000원 벌어서 100원 세금, 한국에서 1,000원 벌어서 200원 세금 이렇게 300원의 세금을 내는 것이다. 이 때 한국 모회사의 실효세율은 얼마일까? 부담세액 / 과표이니까 그냥 20%이다.

7. 세계 v 영토 법인세의 장단점

영토법인세로 가면 한눈에 봐도 기업 입장에서 세부담이 줄어드는 것이니, 다국적기업은 당연히 영토법인세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기준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첫째 외국진출(offshoring)에 관한 것으로 보면, 본국이 세계법인세를 채택하면 영토법인세일 때보다 오프쇼어링 인센티브가 줄어든다. 굳이 법인세율이 낮은 나라에 가봤자, 한국과 해외 법인세율의 차이만큼을 한국에 배당할 때 내야되기 때문에, 오프쇼어링을 할 이유가 줄어든다.

그런데 또 반대 측면도 있다. 세계법인세를 취하게 되면, 해외자회사가 수익을 냈을 때 가급적 본국에 배당하지 않고 그냥 외국법인에 쌓아둘 인센티브가 커진다. 이게 요즘 언론에서 구글과 페이스북과 애플이 미국 밖에 막대한 이익을 쌓아두고 본국으로 전송하지 않는 이유다.

그러면 한국도 세계법인세인데, 다국적기업들이 한국 모회사에 배당하지 않고 외국에 쌓아두는 경향이 클까? 그런 측면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몇년 전에 이걸 갖고 세제실이랑 논의한 적이 있는데, 금액이 크지 않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유는? 미국은 법인세 최고세율이 35%인데 반해, 한국 최고 법인세율이 22%라 외국 현지의 법인세율과 차이가 크지 않을 것이라 굳이 막대한 금액을 해외에 축적할 이유가 적지 않을까 하는 것.

8. 세계 v 영토 법인세의 추세

앞에서 미국 다국적기업들의 사례에서 얘기했지만, 미국 법인세제에 대해서 논의할 때 거의 빠지지 않는 것이, 미국 법인세제의 특수성이다. 높은 법인세율과 세계법인세제, 이 두가지가 결합해서 엄청난 왜곡을 가져오니,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

OECD 국가의 추세는? 압도적 다수가 영토법인세제이다. 아래 그림은 IMF 보고서에서 따온 것인데, 우리가 관심갖는 국가 중에서 세계법인세제를 갖는 나라는 한국 미국 뿐이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얼마전까지 일본과 영국도 세계법인세제였는데 법인세 개편을 통해서 영토법인세제로 옮겨갔다.


9. 의견

앞에서 나는 내 의견은 배제하고 제도 설명을 해봤다 (혹시 모르겠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의견이 표시되었는지).

끝으로 약간의 개인적 의견(소속 기관의 의견이 아니고)을 말씀드리자면,


  1. 법인세 실효세율 국제비교 자료 없다. 국가별 제도 차이가 너무 커서 무망한 일인듯하다. 온갖 통계 만들어내는 공장인 OECD조차도 안만든다.
  2. 그럼 결국 실효세율은 국내에서 기업규모나 특성별로 비교하거나, 시기적으로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서 의미있는 것인데, 일단 외국납부세액공제에 대해 특별히 취급하지 않는 실효세율은 굉장히 조심해서 다루어야 한다.
  3. 한국의 다국적기업 과세제도에 대해서 말하자면, 한국 세제가 특별한 것은 맞는데, 다국적 기업에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불리하게 설계된 측면이 있다.
  4. 명목세율의 관점에서 보아, 한국의 법인세율이 OECD에 비해 너무 낮아서 시급히 올리는 것이 개혁의 최우선 과제다라는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 평균 근처다.
  5. 반대로 한국의 법인세율이 너무 높아서 절대로 인상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로 수긍하기 어렵다. 22%에서 2,3포인트 올려도 여전히 평균 근처다.
  6. 증세는? 장기적으로 도입되어 있는 복지제도가 시간이 지나면 우리나라는 중복지 국가로 가게 되어 있다. 문제는 얼마나 빨리 갈 것인가와 그렇게 가게 되었을 때 재원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에, 증세는 언제고 불가피하다.
  7. 법인세 증세는? 나는 법인세를 다른 세목보다 우선해서 올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결국 세제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학자가 종이 위에서 역사를 무시한체 설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치적 과정이고 동의가 필요한데, 매우 수익이 높은 일부법인의 법인세의 마일드한 인상에서 출발하는 것은 해당 기업에 큰 부담이 되는 것도 아니고 장기적으로 증세의 터전이 될 것이다.
  8. 법인세 실효세율 얘기하면서 외국납부세액공제 등등에 대해서 너무 복잡한 논의 지금 안했으면 좋겠다. 나는 영토법인세제로 가자는 역풍(?) 반드시 불것이라고 본다. 아 물론 이것도 논의가능한데, 지금은 이런 논의 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

2016년 11월 26일 토요일

트럼프 스마트하고 치밀한.....

1. 추수감사절 트윗. 트럼프와 크루그만

추수감사절을 맞아 트럼프는, 미국 노동자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하면서 트윗을 날린다: "우리는 함께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 것입니다. 나는 추수감사절에도 캐리어사가 미국(인디애나주)을 떠나지 않도록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성과가 있습니다. 곧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반 트럼프 전사인 크루그만은 몇시간 뒤, 트럼프 트윗을 염두에 둔 것이 분명한, 그렇지만 언급은 하지 않으면서, 투덜거리는 트윗을 포스팅한다: "미국 제조업의 핵심은 생산성이 계속 높아져 점차 적은 노동력만을 필요하게 된다는 것, 그림을 보면 알것이고, 그래서 어떤 정책도 제조업의 일자리 감소를 막을 수 없다. 서비스업이 미래 일자리의 원천인데, 아무도 이 얘기를 좋아하지 않지"


나 정말 깜짝 놀랐다. 트럼프의 캐리어사의 멕시코 이전 이야기는 일년 내내 미국 대선에서 중요한 화제였지만, 그저 선거때 급해서 내놓은 (지키지 못할) 공약이라고 생각했는데, 트럼프는 진도를 쭉쭉 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트럼프는 당신 생각보다 스마트하고, 치밀하다'는 가설을 만들고 좀 찾아봤다.

2. 트럼프의 선거운동

캐리어사는 지난 2월 10일, 인디애나폴리스에 소재한 에어컨 공장을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멕시코의 몬트레이로 옮기겠다는 발표를 하는데, 발표 현장에서 크게 동요한 노동자들은 고함을 치는데, 현장에서 핸드폰으로 찍은 동영상이 퍼져나가면서 미국내에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그리고 트럼프는 3일 뒤 개최된 공화당 프라이머리 토론회에서 이 비디오를 언급하며, 화끈하게 발언한다. "나는 바로 캐리어사로 달려가서 끝까지 해보겠다고 말하겠다. 당신들 계획은 멕시코로 이전하고, 노동자들이 울부짖는데도 1400명을 해고하고, 그런 끔찍한 일이다. 멕시코로 가서 거기서 에어콘 만들고 세금 한푼 안내고 미국에 들어오겠다는 거지. 난 의회로 가서 당신들이 에어콘 수입할 때 세금 매기자고 합의하겠다. 그러니 멕시코에서 생산하든지, 미국에서 생산하든지 알아서 해라. 이건 미국에 해롭고 미국의 노동자들에게 해로운 무역협정으로 우리가 우리 목을 조르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그리고 박수갈채.


나프타에 회의적이었던 샌더스도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지만, 캐리어사의 이전에 대해서 트럼프처럼 집요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리어 노조(Local USW 1999)는 트럼프가 아닌 샌더스를 공식적으로 지지하였다. 조합 내 투표 결과는 밝히지 않았는데, 노조 위원장에 의하면, 샌더스를 지지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무역협정의 재앙적 결과로 캐리어사는 천개가 넘는 좋은 일자리를 멕시코로 옮기려고 하고 있는데, 이런 무역협정에 대해서 샌더스는 수십년동안 싸워왔다. 그런 점에서 샌더스야 말로 이런 기업의 탐욕에 맞서 싸울 유일한 후보다. 트럼프는 미국내에 일자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미국 노동자 임금이 너무 높다고 말하기도 한다"

NAFTA가 빌 클린튼 시절인 1994년 발효된 것을 염두에 두면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있을텐데, 트럼프는 클린튼과의 본선 첫 토론회부터 캐리어 이슈를 집요하게 제기하였다: "인디애나폴리스의 에어콘 제조업체 캐리어를 보세요. 1,400명을 해고하고, 멕시코로 옮기겠다고 합니다. 수백 수천의 기업들 너무나 많은 기업들이 이렇게 하고 있어요. 더 이상 이렇게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3. 트럼프의 당선 이후

이상은 트럼프의 집요한 선거운동 전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할 수있단 말인가? 트럼프는 정말 NAFTA를 완전히 뜯어고쳐 멕시코로부터의 수입품에 고율관세를 매길 수 있단 말인가? 가능해보이지도 않고, 가능하더라도 엄청 시간이 걸릴텐데. 캐리어의 노동자들은 트럼프 당선 이후 상당한 기대감에 부풀었고, 트럼프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지지를 철회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그거야 이미 선거는 끝난 것이라, 트럼프의 캐리어 약속은 그냥 그렇게 사라지지 않을까라는 예측들. 

캐리어는 트럼프 당선에 맞춰, 인디애나폴리스에서 해고되는 직원들에 대한 교육지원, 자금지원 등의 유화정책을 폈는데, 트럼프는 더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해법을 찾아 나섰다. 캐리어의 모회사인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는 미국의 중요한 방위산업체이고, 미국 정부에 납품으로 매년 50억불씩 수입을 올리는데, 이것은 회사 전체 수입의 약 10%에 해당한다. 

미국내 언론과 전문가들은, 거래의 달인인 트럼프가 캐리어의 멕시코 이전을 막기 위해 이것을 레버리지로 해서,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를 설득(또는 위협)하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다. 그리고 갑자기 이 아이디어가 확 퍼져서, 인디애나 주의 민주당 상원의원인 조 도널리까지 나섰다: "해고된 노동자들한테 세금을 걷어서, 그 세금으로 노동자를 해고한 기업의 물건을 사주는게 말이 되느냐? 우리는 미국인으로 이 이슈를 함께 할 것이다. 노동자가 성공해야 우리 경제도 성공하는 것이고, 우리의 방산업체도 성공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트럼프의 자신감에 찬 트윗이 퍼져나가고, 아마도 조만간 캐리어는 미국 노동자를 위해 멕시코 이전을 철회하는 발표가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모두의 크루그만 포스팅대로 전체 미국에 대한 이야기로 일반화될 수 없을것이고, 특이한 하나의 사례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정권 초반부 지지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고, 지지도를 높일 키 이벤트를 엄선했고, 그것을 달성해 내기 위해 속전속결로 매우 전략적 행보를 펼치고 있다. 그 와중에 민주당 의원도 동원하고, '추석 밥상에 올려' 화제로 만들고 최종적으로 그가 대표를 자임한 노동자의 지지를 견고히 하고 있다. 트럼프 정책의 최종적 모습이 무엇이 될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트럼프가 정말 스마트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심지어 애초 트럼프는 2월에 캐리어 문제를 자기가 해결하겠다고 공언했을 때부터 방산업체의 특성을 이용할 계획이었을까, 하는 궁금증까지.

PS. 지난 대선에서 대부분의 노조는 클린튼을 지지했다. 어쩌면 노조의 지지와 노조원들의 투표가 다른 대표적 선거일지도 모르겠다.

2016년 10월 27일 목요일

지난 토요일, 몇시간동안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쓸 수 없던 차에, 박상준의 <불황터널 : 진입하는 한국, 탈출하는 일본>을 읽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우선 전체적으로 매우 읽기가 쉽다. 특별한 경제학 교육을 받지 않아도 (아니 어쩌면 경제학개론 정도의 지식은 필요하려나 모르겠다), 충분히 읽을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허술하거나 얕지 않다.

일본경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거나, 아니면 아예 그냥 현실 속의 거시경제학 이해를 높이는, 이런 목표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책이다. 상대적으로 한국경제에 대한 부분은 좀 아쉬움이 많이 남는데, 이것은 뭐 한권의 책에 다 기해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 강추!

몇가지 인상적인 것을 두서없이 메모해 둔다.

1. 정치적인 지지는 정책 추진의 결정적인 자산이다.

2001년 고이즈미 취임 직후 지지율은 80%대로 최고수준에서 시작하였고, 2006년 퇴임시까지 50% 이상을 유지하였다. NHK정치의식월례조사가 시작된 1998년 이래 퇴임시점에 50% 이상의 지지를 유지한 것은 고이즈미가 유일하다고 한다.


고베 역시 2013년 2차내각 출범 직후 지지율은 60%대였다. 이게 얼마나 대단하냐면 그 전해의 노다 내각에 대한 지지율과 비교해보면 분명하다.


성공 실패를 차치하고, 2000년대 이후, 아마 한국인이 기억하는 두명의 수상은 고이즈미와 아베 뿐 아닐까? 찾아보니 그 사이에 후쿠다, 아소, 하토야마, 칸, 노다 수상이 있었지만, 어렴풋이 그런 정치인이 있었지, 정도 아닌지?

2. 고이즈미와 아베의 경제학

우선 통화정책은 잘 아는대로, 고이즈미는 세계 최초의 양적완화정책을 폈고, 아베도 제2차 양적완화를 폈으니 유사한 궤를 걸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재정정책은 정반대로 고이즈미(또 아베 1차내각까지)는 재정건전화정책이었으나, 아베는 기동적재정정책으로 각기 긴축과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반대 방향을 지향하였다. 끝으로 구조개혁, 박상준의 평가는 냉정하거나 또는 시니컬하다. 장기적 성장전략이라는 것은 어느 내각에서나 강조되는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

하지만 정치적 측면에서는 구조개혁 역시 충분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불황터널에 의하면 고이즈미의 구조개혁의 초점은 '우정민영화'였는데, 고이즈미는 이를 위해 내각해산을 불사하고, 국민의 여론을 모아 압승하는 소위 '고이즈미극장'을 벌여 대성공을 한다. 하지만 그 실 내용은 정부보유 지분의 일부를 민간에 매각하는 것으로 여전히 우정은 정부가 압도적 대주주라는 것.

3. 아베의 재기

2007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한 후, 아베1차내각이 붕괴하고 아베는 사라지는가 했는데, 2011년 대지진 이후 211명의 국회의원이 '증세에 의존하지 않는 부흥재원을 추구하는 회'를 설립하여, 대규모 국채발행과 일본은행의 인수를 주장하였는데, 놀랍게도 민주당 113명, 자민당 65명으로 구성된 이 모임의 대표로 자민당의 실패한 정치인 아베가 선임되었다. 그 배경이 몹시 궁금한데, 경제학 책이라 그런지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없다. 좀 아쉽다.

4. 다케나카 헤이조

케이오 대학 교수 출신인데, 고이즈미1차내각에서 경제정책담당대신 겸 금융담당대신을 역임. 현재의 한국식으로 말하면 기획재정부장관과 금융위원장을 겸임한 것이고, 예전 한국식으로 말하면 경제기획원장관과 재무부장관을 겸임한 것. 여튼 막강한 힘을 갖고 소위 '성역없는 개혁'을 진두지휘했는데, 그가 최근 낸 책에서 '정부가 나서서 구체적으로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장기 성장 개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단언.

5. 원샷법

박상준은 일본에서는 원샷법 제정에 반발이 없었는데, 한국에서는 재벌의 후계작업 과정에 악용될 우려때문에 상당한 반발이 있다고 지적. 뭐 틀린 말은 아닌데, 이법의 내용과 입법과정을 좀 지켜본 바로는 크게 재벌에 악용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다만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있다.

우선 이 글의 첫부문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정치적 지지는 정책의 추진에서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일본의 원샷법 첫 수혜기업은 미쓰비시중공업과 히타치제작소 사이의 화력발전사업에서의 신규합작법인 설립이었다. 일본에서는 이 승인과 관련하여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은 생각만 해도 답답하다. 원샷법 첫 수혜기업으로 한화케미컬, 유니드, 동양물산기업 세개 회사의 사업재편계획이 승인되었는데, 김관영의원이 국감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이중 유니드와 동양물산기업 두 기업은 모두 대통령의 특수관계에 있는 기업들이었다. 유니드는 대통령의 이종조카가 부사장이고, 동양물산기업은 사촌형부가 오너. 워낙에 엽기적인 정치상황이 전개되어 이정도로는 별 감각이 없을지 모르겠으나, 이런 관계를 알고 선정했든, 모르고 선정했든 산자부의 일처리는 한심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 법은 첫 시작부터 코메디가 되버린 느낌.

6. 여성의 경제참여

소위 경력단절을 나타내는 M-shape 여성 취업율 차트는 일본이 덜 뚜렷. 그런데 재미있는 아이디어는, 일본 내각부 남녀공동참획국의 '여성의 활약이 보이는가 사이트 女性の活躍「見える化」サイト'. 기업별 남여직원비율을 게시하는데, 관리직과 임원직 여성 비율도 표시. 또 일본 게이단렌의 사이트는 '여성의 활약 女性の活躍', 여기에서는 각사별로 女性の役員・管理職登用等に関する自主行動計画이라는 명칭으로 각사가 향후 계획을 게시.

한국의 경우도 여성의 경제참여율 자체는 많이 높아졌지만, 소위 유리천정이라고 하는 상급직 여성비율이 너무도 낮은 것을 고려해볼 때 참고할 만

7. 엔화 안전자산

박상준은 충격이 올 때마다, 엔화가 강해지는 현상에 대해 '왜 엔화가 안전자산인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썼는데, 나 역시 이게 정말 궁금하다. 그 현상을 설명하는 논거는 주로 "일본 국채는 GDP 대비 200% 이상으로 OECD 국가중 가장 높지만, 그 국채는 주로 일본의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고, 일본의 금융기관은 일본의 가계의 자금을 주로 운용"이라는 것인데, 이게 난 잘 납득이 안간다. 저렇게 엄청난 국채를 깔고 있는데, 어느 순간 신뢰가 확 사라지기 시작하면 도미노처럼 국채를 팔자라고 줄을 설 것 같은데, 국채 보유자가 외국금융기관이 아니고 국내금융기관이라고 하는게 그토록 큰 행동의 차이를 보일까? 잘 모르겠다.

8. 중앙은행 총재

일본은행 총재의 임면에 관한 약간의 에피소드. 일본 역시 선진국답게 중앙은행 총재는 양원의 동의를 받아 내각이 임명한다 (부총재와 심의위원도 마찬가지이다). 2008년 일본은행 총재로 당시 부총재였던 무토가 추천되었는데, 참의원에서 부결. 특별한 하자는 없었으나 무토가 대장성출신이라는 것 (우리나라 기재부). 그러니까 기재부 출신은 부총재까지는 몰라도 총재는 곤란하다는 국회의 선언.

반면 지금 세개의 화살 중 하나인 소위 '차원이 다른 금융정책'을 펴고 있는 구로다는 2013년 초 아시아개발은행총재였는데, 무토와 마찬가지로 대장성출신. 그래서 어렵지 않겠느냐는 설이 많았는데, '디플레이션으로부터의 탈출'을 일본경제의 최대과제로 공공연히 선언하였고, 민주당 역시 자격이 되면 대장성 출신이라도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변화에 힘입어 무난히 의회 동의를 받아 일본은행 총재 취임. 인물차이보다 상황의 차이, 역시 인사는 운칠기삼.

9. 청년실업

한국과 일본의 (시차를 둔) 유사성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많은 기사와 분석이 있다, 인구추이, 생산성, 경제성장율 등등. 그런데 중요한 차이가 몇 있는데 하나는 한국의 일본에 비해 양호한 기업부채이고 또 하나는 일본에 비해 암울한 청년실업률. 이것 역시 궁금한 영역이었는데, 이유가 무엇인지 읽어도 잘 잡히지 않는다. 양질의 일자리 자체가 부족하다든가, 대중소기업 초임 격차가 한국이 일본에 비해 너무 심하다든가 하는 것들은 뭔가 좀 부족한 듯한 느낌. 이건 더 고민해야 할 듯.

2016년 3월 31일 목요일

탈 빈민촌 정책 효과의 증거를 찾아 나선 경제학자들.....

1. 배경

스타 중의 스타 경제학자라고 할 Raj Chetty의 빈민촌에 대한 이웃 효과 분석 프로젝트는 작년에 미국의 언론을 떠들석하게 한 바 있다. 그리고, 며칠 전 이것과 관련된 또 다른 연구가,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각 언론에 화제가 되었다.

사실 빈민촌에서 자라는 것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라는 질문에 대해 상식적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답변은, 가난한 동네의 아이들이 나중에 가난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수많은 관찰연구에서 발견되지만, 이런 관찰로는 이것이 이웃의 효과인지 아닌지는 구분할 수 없다. 그래서 이웃의 효과에 대한 정책적 도전과 그 정책의 인과적 증거를 찾기 위한 경제학자들의 길고도 창의적인 추적이 계속되었는데 이것은 좀 과장하자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해서 다 잊어버리기 전에 언젠가 써먹을 때를 위해 간단히 메모해 둔다 (그런데 그런 날이 올지는 모르겠다).

2. Moving to Opportunity

이번에 알게된 것인데, 미국에서 정책 효과의 객관적 증거를 찾기 위해 Randomize Controlled Trials를 시도한 역사가 상당하다. 빈민촌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서 한국의 국토부에 해당하는 미국 주택 및 도시개발부(U.S. Department of Housing and Urban Development (HUD))는 "기회를 찾아 이사가기 Moving to Opportunity (MTO)"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아 국회 언저리에서 일하는 내 입장에서 언급해 두고 싶은 것이 있는데, 이 정책은 <주택 및 공동체 개발법 Housing and Community Development Act of 1992 (H.R. 5334 (102nd))>의 152조가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훌륭한 입법 선례를 남긴 미국 국회에 경의를.

이 프로젝트에 따라 1994~1998년간에 미국 5개 도시(볼티모어, 보스턴, 시카고, LA, 뉴욕) 빈민촌의 낙후된 공공임대주택 주민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추첨을 하였다. 여기에 당첨된 한그룹은 빈민율이 낮은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조건으로 주택 바우처를 지급하였고 (Experiment 그룹), 당첨된 또 한그룹은 이사 지역에 대한 조건 없이 주택 바우처를 지급하였고 (Section 8 그룹), 탈락한 마지막 그룹에게는 바우처를 포함하여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Control 그룹).


3.  중간평가(4~7년)

MTO에 대한 첫 분석은 여러 팀에서 수행되었는데, 그 중에서 경제적 성과와 관련해서는 NBER이 맡았고, 하버드와 프린스턴의 경제학자들인 Lawrence F. Katz, Jeffrey R. Kling 및 Jeffrey B. Liebman이 담당하였다. 아래 표에서 보듯 다양한 항목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발견되었지만, 경제학자들의 입장에서 당황스럽게도 성인들의 소득에 미치는 영향은 발견되지 않았다. (표의 출처는 Kats-Kling-Liebman (2001), “Moving to Opportunity in Boston: Early Results of a Randomized Mobility Experiment,”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vol. 116, pp. 607-654. 공개된 버전은 NBER Working Paper로 다운 가능)



이것은 이들의 다른 논문에 등장하는 그래프로도 확인이 된다. 각 시기별로 비교해 보아도 세 그룹 사이에 고용율의 뚜렷한 차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출처는 Kling-Liebman-Katz (2007), "Experimental Analysis of Neighborhood Effects," Econometrica, vol. 75, pp. 83–119. 이 것 역시 공개된 버젼은 NBER에서)


4.  최종평가(10~15년)

최종평가 역시 NBER에서 맡았는데, 이들이 HUD에 제출한 공식 보고서에 의하면, 성인그룹은 10~15년의 장기적 효과로도 소득이나, 고용율에서 특별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2008년까지의 데이터를 사용하였다. (Sanbonmatsu et al. (2011), Moving to Opportunity for Fair Housing Demonstration Program: Final Impacts Evaluation,
U.S. HUD)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청소년들(15~20세) 역시 이제 10여년이 경과하여 성인이 되어 경제적 성과를 평가할 수 있었는데,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특별한 효과가 없었다

차트로 보면 더 뚜렷한데, MOT 프로그램으로 추첨을 한 후 43분기가 경과하는 동안 고용율을 오르락 내리락이 심하였지만, 각 그룹의 모습은 서로 거의 흡사하였다.


5.  It Ain't Over 'til It's Over

첫 MTO가 1994년에 도입되어, 14년이 경과된 2008년까지의 데이터를 이용한 최종보고서가 나왔지만, 끝이 아니었다. 우리의 호프 체티가 나시 나섰다. 이번에는 2012년까지 데이터를 확장하여 최종보고서에서 다루지 못하였던 청소년 이전의 아이들이 성인이 된 모습까지 포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토록 긴 시점간 효과를 구하기 위해 체티의 장기인 소득세 자료를 MTO와 링크시켜서 데이터를 확보하였다. (Chetty-Hendren-Katz (forthcoming), "The Effects of Exposure to Better Neighborhoods on Children:
New Evidence from the Moving to Opportunity Experiment," American Economic Review공개된 버전은 NBER Working Paper)

결국 이들이 밝혀낸 MTO가 소득에 미치는 효과는 이사 시기에 13세 미만이었던 아이들에 있어서는 뚜렷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효과는 전통적인 Section 8 그룹보다, Experiment 그룹에서 더욱 강하였다.



6.  발상의 전환 

며칠 전 뉴욕타임즈에 "나쁜 환경에서 자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해롭다 Growing Up in a Bad Neighborhood Does More Harm Than We Thought"라는 기사가 실렸다. 미시간 대학의 경제학자 Justin Wolfers가 자신이 지도한 대학원생 Eric Chyn의 박사논문을 소개한 것인데, 또 하나의 스타탄생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Chyn은 'MTO는 교과서적인 형태로 RCT가 진행되었지만, 신청자를 대상으로 추첨을 해서 바우처를 받는 그룹과 그렇지 못한 그룹으로 나누었다. 그런데 이들 신청자는 아예 신청조차 하지도 않은 사람들에 비하면, 자녀 교육에 대한 적극적 의지가 큰 그룹 아닐까? 그래서 추첨에서 떨어져서 Control 그룹에 속한 이들조차도 빈민촌의 다른 사람들보다 자녀가 나쁜 환경에 덜 노출되도록 노력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러한 환경개선이 아이들이 성인이 된 이후의 소득에 미치는 효과가 덜 크게 나타난 것은 아닐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듣고 보면 너무 당연한 말.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하는 것인데, Chyn에게는 다행히도(?) 1995~98년간에 시카고 주택청은 빈민들이 집중 거주하는 고층 공공임대주택을 대규모로 철거하였다. 그리고 이들에게 주택 바우처를 주었다. 그래서 자연실험에 의해 빈민촌을 떠나 이주한 그룹과 빈민촌에 머무른 그룹으로 나뉘었고, 이 두 그룹은 각 구성원들이 어떤 종류로도 신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훌륭한 실험자료를 제공하였다


이렇게 분석한 결과 고용율과 소득 모두 콘트롤 그룹에 비해 실험그룹이 뚜렷하게 개선되었다. 아래 그림에서 제일 왼쪽의 푸른색은 Chyn이 분석한 자연실험의 결과이고, 오른쪽 두개는 Sanbonmatsu et al의 MTO 최종보고서에 나타난 Section그룹과 통제그룹의 비교(녹색)와 실험그룹과 통제그룹의 비교(노란색) 결과이다. 그리고 왼쪽에서 두번째 와인색은 MTO와 비슷한 방식으로 시카고 주택공사가 진행한 Section 8그룹과 통제그룹 사이의 비교이다.  



7. 부러움과 배울 것

일단 무엇보다도 정책효과에 대한 객관적 증거를 찾기 위한 집요한 노력은 참 부럽다. 행정부와 입법부가 무려 이십여년 전에 주택정책에 RCT 방식을 도입한 것도 놀랍고, 관련된 법에 해당 정책의 결과에 대한 보고서 작성을 명시한 것도 한국에선 보기 힘든 일이고, 그 보고서의 작성주체가 세계적인 학자들이고, 또 그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사실을 사실대로 밝혀서 '이 정책의 경제적 효과는 발견되지 않았다'라고 명시하는 것도 용감한 일이고, 그리고 학자들이 끝없이 자료를 파헤치면서 새로운 해석을 추가해내는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

여기에서 빈민촌으로 문제가 되는 주택은 대도시에 환경이 안좋은 지역에 위치한 낡은 공공임대주택이다. 한국은 워낙에 공공임대주택 보급비율이 낮아 이를 높이려는 계획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공급량 확대와 더불어 공공임대주택의 주민들이 그렇지 않은 주민들과 믹스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고, 자칫 발생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의 관리부실에 의한 노후화, 슬럼화에 대해서도 경계를!

그리고 울퍼스가 뉴욕타임즈 기고문 마지막에 남긴 멘트도 재미있다. 정부의 사회정책 수행능력에 회의적인 보수파는 Chyn의 글을 통해서, '역시 정책에 지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꼭 정책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적용되게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워'라고 생각할 것이다. 반면에 리버럴들은 '이런 실험을 통해 사회정책의 효과를 측정하는 것은, 지원자가 아닌 전체 모집단에 적용하는 것에 비해 일반적으로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생각할 것.

8. 기타 

체티가 손대는 수많은 영역 중에서 가장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이 "기회의 평등 프로젝트 The Equality of Opportunity Project"인데, 1부가 2014년초에 큰 화제가 되었던 "세대간 이동가능성 Intergenerational Mobility"이였고, 이것은 내가 간략하게 정리해 둔 적이 있다. 오늘 소개한 "이웃의 효과 Causal Effects of Neighborhoods"는 그 2부에 해당.

아 그리고 내 블로그에 보니, Eric Chyn의 또 다른 연구를 흥미롭게 소개한 적이 있었다. BP가 2010 멕시코만에서 대형 사고로 해안을 기름범벅으로 만들었던 그 사건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을 정리한 것이었는데, 당시에도 참신하다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 양반 또 어떤 멋진 작품을 낼지 기대가 된다.

2016년 2월 6일 토요일

남재희 선생 장서 대방출에서 건진 몇권의 책

일주일 쯤 전 한겨레신문사에서 남재희 선생의 애장서 2만권을 사옥에 진열하고 아주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는데, 행사 마지막날 다녀왔다. 아 정말 엄청난 콜렉션이었다..


남선생님이 백과사전적 인물인 것이, 사회과학, 인문학, 자연과학, 예술, 여행을 가리지 않고, 단행본과 학술지, 대중잡지, 화보로 다양했고, 언어도 한국어, 영어,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넘나드는. 온갖 전문 분야별 사전도 있었고, 아 이런 책까지, 그런 생각이 드는 것들도 있었다.

도서 판매 마감 직전이어서 이미 좋은 책은 다 쓸어갔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남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책 탐사였고, 책 열 몇권을 구입했고 횡재했다는 느낌이었다. 점심 시간에 잠시 짬을 내고 간 것이라 더 살펴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었지만, 에이 나 말고 다른 이한테도 보석을 발견할 기회를 남겨줘야지 하는 생각에 그 정도로 만족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일주일을 정신없이 보내느라, 책들이 차 트렁크에 있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꺼내서 차분히 살펴보았다.

1. 워싱턴 DC의 추억

20년 전 처음 미국에 갔을 때, DC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이 의회도서관과 스미소니언 박물관이었다. 그래서 고른 두권.


우선 Treasures of the Library of Congress (1980)는 의회도서관에 근무했던 Charles Goodrum의 작품으로 놀랄만한 화보로 가득찬 318페이지의 의회도서관 소개서로 예컨데 아래 사진은 의회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Petrus Apianus가 1540년에 쓴 천제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Astronomicum Caesareum으로 저 페이지는 6층의 레이어로 돌아가는 서클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 아래 사진은 19세기에 유행했던 책 옆면에 금박으로 그림을 새긴 책으로 왼쪽은 Illustrations of Baptismal Fonts (1844)이고, 오른쪽은 The Life and Remains of Henry Kirke White (1825).


다음으로 Hail to the Candiate는 1992년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편찬한 미국 대통령 선거 홍보물의 역사로 이것도 기본적으로 화보집에 가깝다.


예를 들면 위 그림에서 제일 왼편부터 보면 데디 루스벨트 지지자들이 1912년 대선에서 옷에 달던 핀인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체셔 고양이에서 따왔다고 한다. 루스벨트의 유쾌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성격을 상징한다고. 두번째 것은 링컨이 1864년 재선에 나서면서 사용한 포스터로 공화당이 아닌 National Union Party 소속임이 분명하게 강조되어 있다. 세번째 사진은 1950년대 TV 중계가 보급되자 민주당 측에서 전당대회에 참석하는 대의원들에게 주의사항을 적어 나눠준 팜플렛. 내용이 재미있다: 시간에 맞춰 일찍오고, 자기 자리를 지키고, 너무 TV 카메라 주목하지 말고, 등등. 그리고 마지막은 공화당의 쿨리지 후보가 너무 딱딱한 이미지를 희석시키기 위해 유머러스하게 자신의 사진을 시가에 부착했다고.

2. 위대한 언론

다음 세권은 각각 워싱턴 포스트 100주년 기념, 더 타임즈 200주년 기념 및 포린 어페어스 75주년 기념과 관련된 것들이다.


먼저 The Washington Post: The First 100 Years (1977)은 포스트에 23년간 근무했던 Chalmers M. Roberts의 역사서로, 500쪽에 가까워서 아마도 읽을 기회가 없겠지만 그저 샀다. 여기에도 인상적인 장면이 있는데,


왼쪽 페이지는 1971년 대법원이 펜타곤 페이퍼 보도에 대해,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언론의 손을 들어준 기념비적인 판결보도와 그것을 Katharine Graham과 Benjamin C. Bradlee가 보면서 웃는 모습이고, 오른쪽은 미국사에서 언론이 대통령의 하야를 가져온 유일한 사례인, 워터게이트 사건. 제일 위의 두 남자가 Bob Woodward와 Carl Bernstein이고, 아래는 닉슨대통령과 녹음테이프를 연결하는 절묘한 삽화.

위대한 언론은 인물을 바꿔 가면서 끝없이 발전해왔는데, 150주년에 다시 역사서가 나온다면 Jeff Bezos의 실험은 어떻게 묘사될지.

다음은 The Times, Past Present Future: To Celerbrate Two Hundred Years of Publication (1985), 이것은 앞의 포스트 역사서보다 훨씬 가볍다 (분량도 형식도). 더 타임즈는 1785년에 처음 발간되었는데, 사진이 실린 것은 1922년에 이르러서였다. 아래는 첫 사진 페이지.



또 지난 200년간 타임즈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해서 엄청난 자부심을 표현하고 있다. 아래 그림에서 재밌는 것은 1820년 캐롤라인 여왕에 대한 재판 즈음하여 등장한 그림인데, 왼편은 곰으로 표현된 여왕의 정부이고, 오른편은 여왕의 변호사 Henry Brougham인데 그의 방패의 문양이 바로 더 타임즈.


마지막 Foreign Affaris(Sep/Oct 1997)는 그 자체 75주년 기념호이다. 일단 다른 것은 모르겠고, 기념호에 기고한 필자들의 명성만 봐도 정말 입이 벌어질 정도. 슐레진저, 헌팅튼, 크루그만, 브레진스키, 드러커, 슬로터. 그리고 재미있는 것이 75년간 발행된 가장 중요한 책 소개하는 글이 있는데, 이 부분은 사라지고 없다. 남재희 선생이 뜯어낸듯 (그리고 조금 있다 이렇게 뜯겨진 서평이 어디로 갔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3. 읽었던 책들

아래 세권은 한국어 번역본이 나왔고, 예전에 한글판으로 다 읽었던 책들이다.


우선 Herbert Stein의 책은 이제 기억도 잘 안나지만 그래도 닉슨과 포드 시절 CEA 의장이었던 이의 <대통령의 경제학 (김영사)>이여서, 그리고 워터게이트의 주인공 Bob Woodward의 또하나의 걸작 <공격 시나리오 (따뜻한 손)>는 너무나 흥미롭게 읽었던 책이라, 그리고 남재희 선생이 골프 책도 읽는구나 하면서 재미있어했던 Jack Nicklaus의 <골프 마이 웨이 (팩컴북스)>는 고전 중의 고전이라, 그래서 샀다.

그런데 Woodward의 책에 몇장의 종이들이 끼워져 있었다.


내가 짐작하건데, 남선생은 1994년 12월 Economist의 올해의 책 기사를 통해 관심을 갖고, 이 책을 샀고, 그후 2015년에 The Guardian과 <한겨레신문>에서 관련 기사를 보고 오려서 책에 끼워 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래서 앞에 말한 Foreign Affairs에서 사라진 75년간의 명서 소개는 이런 방식으로 다 분해되서 각각의 책에 끼워져 있지 않을까 추측.

4. 미국 경제사

이번에 구입한 책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이 The History of American Business & Industry (1972). 딱딱한 경제사 책을 잘 읽어내지 못하는 내 처지에 그냥 그때 그때 이리저리 넘겨가며 짧은 아티클들과 화보들을 보면 재미있을 듯.


한 장면만 소개하면, 미국인들의 개척정신. 골드러시 시대에 캘리포니아로 가자는 포스터(1849), 대륙횡단열차로 서부로 가는 노동자들(1869), 헨리 포드의 자동쟁기(automobile plow, 1908), 우라늄탄광(1940년대후반), 그리고 달에 도착한 인류.


이 책에는 또한 현대경제학을 만든 Paul Samuelson의 서문이 포함되어 있다. 그냥 몇 구절만 보면 "경제사 없는 미국사는, 햄릿이 등장하지 않는 햄릿과 마찬가지 ...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볼수 있는, 공장의 단순한 나사에 지나지 않는 작은 노동자, 그가 조립라인에서 볼트 999를 평생 돌리는 잊을 수 없는 이미지는 노동자의 '소외'에 대해서 허버트 마루쿠제나 청년 맑스의 책보다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얘기해 준다.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에 나오는 윌리 로만은, 세일즈맨 일생의 공허함에 대한 슬픈 사례이다.... 때때로 시스템의 역사적 잘못을 인식하는 것은 이 잘못을 바로잡는 첫걸음이다"

5. 아내를 위하여

끝으로 아래의 네권의 책은 내가 보려고 산 것은 아니고, 디자인과 영국사에 관심있는 토론토 출신 내 아내를 위한 것들.


좌상부터 시계방향으로, Illustrated Guide to Britain (2nd ed. 1976), Treasures of Canada (1995, 책 속의 건물은 내 아내의 모교인 토론토 대학이다), The Tower of London in the History of the Nation (1972), The Elements of Style: A Practical Encyclopedia of Interior Architectural Details, From 1485 to the Present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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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다보니, 이번에 구입한 책들은 대개가 서재에서 읽을 책들이라기 보다는 소파나 침대 옆 테이블에 두고 뒤적일 책들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나와 아내의 책읽는 취향이 많이 달라서, 내가 산 책에 아내가 관심을 거의 두지 않는데, 이번에는 여러 권 같이 볼 수 있을 듯.

끝으로 남재희 선생께 경의와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