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5일 토요일

미국 세대간 계층이동성에 관한 연구, 그리고 부러움.

요 며칠 미국의 주요 경제면과 블로그스피어에서 단연 화제가 된 것은, Raj Chetty가 이끄는 연구팀의 미국에서의 세대간계층이동성(Intergenerational Mobility, IGM)에  관한 놀라운 실증연구였다. 난 연구의 발견에도 놀랐고, 데이터에도 놀랐고, 대중들과의 소통에도 놀랐고, 학자들의 인테그리티에도 놀랐고,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부러웠다.

수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이 연구를, 꼼꼼히 더 생각해보기 위해 메모해 둔다.

1. 배경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오랜기간 동안 이 주제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겠지만,  이 주제가 처음 대중적인 화제로 떠오른 것은 미국 대통령 경제자문회의 의장인 Alan Kruger가 2012년 미국진보센터(CAP: Center for American Progress) 연설에서, Great Gatsby Curve를 소개하면서부터였다. 요는 여러 나라를 비교해보니, 1) 불평등도가 클수록 IGM이 낮더라는 것과 2) 미국의 경우 지속적으로 불평등도가 커졌으니 IGM도 악화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 (나도 이것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한 적이 있다)




이것은 어메리칸 드림이라는 기회의 땅으로서의 미국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져서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오바마도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국회에 제출한 2012년 대통령 경제 보고서(Economic Report of the President)에서 이것을 다루었고, 지난 연말에 CAP을 방문한 자리에서, 연설가로서의 오바마의 진면목을 보여줬을 때, 주제도 이것 불평등과 IGM이었다. 

2. 시간에 따른 변화

Chetty 팀의 첫번째 연구 주제는 IGM을 시기별 변화를 살펴보는 것. 우선 다음 차트를 통해서 간단한 내용을 먼저 살펴보자.


이 차트는 1971년에서 1974년에 태어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가로축은 이들이 태어났을 때 부모의 소득수준(백분위)이고, 세로축은 그들이 20대 후반이 되었을 때 소득수준의 평균 (백분위)이다. 기울기는 0.299인데 당연히 이것이 가파를수록 IGM가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시기적으로 뒤로 가면 이 경사가 더 가파르게 변했을까? 


71-74년생들에 더해서 75-78, 79-82년 생들에 대해서 동일한 추적을 했는데, 세개의 추세선은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러니까 통념과는 달리 미국의 IGM은 악화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Chetty등은 현대의 소득불평등 심화는 주로 Top 1 %의 소득 향상에 집중된 것이라, 하위 계층의 신분상승도에는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해석하면서 Great Gatsby Curve와 자신들의 발견이 모순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

하나 더, 마지막으로 흥미로운 것이 birth lottery라는 것인데, 소득이 높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이 얼마나 이 아이가 성년이 되었을 때 얼마나 높은 소득을 기대할 수 있느냐하는 것. 불평등도는 커지고, IGM은 그대로라면, 이 birth lottery의 금액은 커진다는 것. 이것을 직관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래 그림이다.


소득불평등도가 커졌다는 것은 사다리가 길어졌다는 것이고, IGM이 불변이라는 것은 계단 한 칸을 올라갈 확률은 동일하다는 것. 이것을 복권으로 말하자면 당첨될 확률은 불변인데, 당첨시 상금이 커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

3. 지역적 차이

Chetty팀의 두번째 주제는, 미국내에서 어느 지역에 태어났는가하는 것이 IGM에 영향을 미치는 가하는 것이다. 이것도 매우 놀라운데, 지역별로 IGM의 차이가 너무 커서, '미국은 기회의 땅인가'라고 묻는다면, '기회의 땅과 기회가 없는 땅의 연합체'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 

우선 이들이 상대적 IGM이라고 했던 것부터 보자. 위에서 설명했던 대로, 부보의 소득(백분위)과 자식의 소득(백분위)에 대한 기울기가 클수록 IGM이 낮다고 해석할 수 있는데, 미국을 지역(Commuting Zone)별로 구분해서, 이 기울기를 살펴 보면 이동가능성이 극히 낮은 지역(짙은색)부터 극히 높은 지역(옅은색)까지 다양하게 분포. 


이번에는 조금 시각을 달리해서, 절대적 IGM을 보자. 부모가 소득이 하위 25% 수준일 때, 그 자식이 성년이 되서 얻게 된 소득의 평균값의 백분위 위치를 지역별로 살펴보면 이번에도 IGM이 매우 낮은 지역(짙은색)과 매우 높은 지역(옅은색)으로 뚜렷하게 구분.



당연히 그 다음 분석은, 어떤 요인이 지리적으로 IGM의 차이을 만들어내는가 하는 것인데, 첫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인종적 요인. 이들은 흑인 비중이 높은 지역일수록 IGM이 낮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 지역의 백인들에서도 IGM은 낮다는 것. 그러니까 결국 인종적 특성이 IGM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가능한 설명은 흑인비중이 높은 지역은 인종/소득의 Segregation이 높고, 이 Segregation이 높을 수록 IGM이 낮다는 것.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지역별 소득불평등도. Kruger가 소개한 바 국가별로 보면 불평등도가 클수록 IGM이 낮았는데, 이것이 미국내에서 지역별로 보아도 동일하게 관찰된다는 것.


그 외에도 학교의 질 (학교비교성적(+), 고교중퇴율(-)), 사회적 자본 (사회적자본지수(+), 종교인비율(+)), 가족 요인 (외부모비율(-)) 등 다양한 요인들이 IGM에 영향을 미쳤다. 


4. 데이터

이전에도 여러 실증연구가 있었는데, 이들의 연구는 자료의 측면에서 획기적이다. 첫째 규모면에서 4천만명의 아이를 추적한 것이어서 다른 연구들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이고, 두번째로는 데이터의 소스 측면인데 다른 연구들이 주로 서베이 데이터에 의존한데 반해 이들은 소득세자료를 분석. 당연히 퀄린티도 매우 개선.

어제 내 페북에서 이 연구에 대해 약간의 대화가 있었는데, 한국의 경제학자들이 가장 부러워한 것이 이 대목이었다. 나도 오래전부터 세무데이터를 이용한 연구가 개방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이 연구 외에도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세무 자료를 이용해서 온갖 분석을 했던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데, 사실 요즘은 좀 주저하게 된다.

이렇게 세무자료 같이 민감한 자료를 공개할 때는 de-identified라고 해서 특정인으로 추적을 할 수 없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이것이 쉽지 않다. 내가 세부적인 것은 기억은 안나는데, 몇해전에 미국의 한 주에서 연구목적으로 의료데이터를 de-identified해서 공개한 적이 있다. 주지사가 이것에 대해서 엄청 홍보를 했는데, 그 지역 대학원생이 공개된 자료를 분석하고 추적해서 그 주지사의 모든 의료기록을 복원해서 주지사에게 보내고 조롱했던 적이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개인정보 침해를 우습게 아는 경향이 있어서 더 걱정이기도 하고. 어쨋든 나는 다소 주저하는 바가 없지 않지만, 보다 광범위하게 데이터를 공개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제도나 법령도 정비할 것이 많을 것이고, computer scientist를 중심으로 de-identification 테크닉 발전도 필요하고.

5. 소통

요즘 미국에서는 중요한 연구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논문만 제출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대중과 소통하는 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예전에 내가 Oregon Health Insurance Experiment에 대해서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 때 감탄했던 것이 이들은 성과가 나올 때마다 전문 학술지인 QJE와 NEJM에 기고하는 것에 더해서 프로젝트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Homepage를 독립적으로 만들어서 연구와 관련된 온갖 것들을 제공하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번에도 그러한데, Chetty팀은 이제까지의 연구성과를 NBER의 두편의 워킹페이퍼로 발표했고, The Equality of Opportunity Project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간략한 요약(Executive Summary), 프리젠테이션용 슬라이드, 실제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동영상, 데이터, 연구진, 뉴스인용, 그리고 interactive chart까지, 정말로 각계 각층을 겨냥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프로페셔널 경제학자가 아닌 나같은 현장 종사자로서는 너무나 훌륭한 요약문과 슬라이드로 충분했고, 해당분야 학자들이야 논문을 읽을 것이고.

6. 학계의 모습

지난 신정 때 양동휴 교수댁에 세배 갔다가, 경제사하시는 분들이 버냉키에 대해서 극찬하시는 데, 그 핵심은 버냉키는 대공황의 교훈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버냉키가 어느 자리에선가 연설을 하면서, 프리드만-슈와르츠의 화폐사 연구를 언급하며, 자신은 절대로 대공황 시기의 정책실패를 피할 것이라고 한 적이 있다고. 이것도 마찬가지다, 좀 단순하게 얘기하면 긴 시기를 대상으로 한 실증연구는 전부 경제사 아닌가? 

또 학자들의 인테그리티도 중요. 분배정책에 대해서 리버럴과 보수가 극단적으로 대립하지만, 이런 무게있는 연구가 결국은 중심을 잡아주지 않을까 싶다.  팀의 핵심 멤버인 Chetty도 그렇고 Emmanuel Saez도 그렇고, 거칠게 구분하자면 리버럴 성향이 강한 경제학자들인데, 이들은 리버럴이 요즘 가장 매달리고 있는 'IGM의 악화'는 사실이 아니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좌우간 무척이나 부러운 그런 연구다. 이들의 결과만으로도 한국의 정책가들에게 인사이트를 주지만, 우리의 정부가, 우리의 학계가 우리의 현실에 대한 정확한 모습을 제공하기를 기대한다....

PS (June 4, 2014) Science의 Jeff Mervis가 IRS 조세정보 연구활용에 대한 흥미로운 기사를 포스팅하여, 이것을 정리해 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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